HUNTER'S COLUMN

시각장애인들에게 골프를 가르치다

작성자 이요민 날짜 2024-01-31 19:32:10 조회수 32

2006년 ...
지금은 고인이 되신 어떤 분의 부탁으로 시각장애인들에게 골프를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골프컬럼을 함께 쓰던 분이었는데 한국에 시각장애인골프를 처음 시작한 분이기도 합니다.
왕십리에 있는 실내연습장 사장님이 장소를 빌려주어 일주일에 두세시간 레슨을 하였지요.
 
골프를 배우러 오신 시각장애인 모두가 골프를 처음 접하는 분들이었고, 
선천성 전맹인 분들은 당연히 골프를 단 한번도 본 적조차 없고, 약시인 분들도 골프를 제대로 본 적도 없고 모르는 상태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제일 먼저 할 일은 그분들이 골프와 친하도록 하는 것이었지요.

골프는.. 
처음 시작하는 누구에게나.. 
힘들고… 익숙하지 않고....재미없고.....참 불편한 운동이잖아요. 
잘하는 분들은 물론 제외이긴 합니다만.. 

 
첫 날 십여명이 모였는데 제 소개를 했습니다.
"혹시... 원빈 아세요?"
곧바로 여성회원들에게서 열정적인 대답이 나옵니다.
"네! 미남.. 영화배우잖아요."
"제가 바로 원빈과 꼭 닮은 짝퉁 원빈입니다. 하여튼… 쫌.. 짝퉁으로 닮았다고 사람들이 말합니다."

이 새끼가 갑자기 뭔 말을 하나 싶었는지..
잠시....
정적이 흘렀다가....
여기저기서 킥킥 웃음이 터졌습니다.
짝퉁이라는 말이 웃겼나 봅니다.
시각장애인들은 제 얼굴을 볼 수도 없고 확인할 수도 없으니~~

레슨을 시작하려고 그들의 몸상태를 알고자 근육을 만져봤는데 아주 놀랐습니다.  
대부분의 시각장애인들은 항상 조심해서 걷느라 몸이 굉장히 뻣뻣하며, 약시들은 땅을 보고 걷는 습관때문에 어깨나 척추가 틀어진 분들이 많습니다.
운동부족이라 배가 나오고 안마를 하는 직업을 가져서 손의 악력은 강하지만 몸이 유연하지 못하고 상당히 굳어 있더군요.
골프를 처음 접하는 그분들에게 공을 잘 치게 하기 보다는 골프는 즐겁고 유쾌한 운동이라는 것을 가르쳐야 했습니다.
첫날부터 자연스럽게 장난도 치고 유머를 하면서 친해졌지요.
다들 운동량이 부족해서 처음부터 스윙은 너무 어렵고 굳어진 근육을 풀기 위한 스트레칭부터 시작하였습니다.

몇 개월 지나며 점차 친해지면서 많은 분들이 마음의 문을 열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여러 수많은 아픈 사연을 가지고 있어 마음이 많이 아팠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시각장애를 가진 분들에게 어떻게 골프를 가르쳤을까요?
시작하기 전 저도 많은 고민을 가지고 있었는데 의외로 쉽게 해결되었습니다
골프를 태어나서 한번도 보지 못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제가 직접 스윙의 부분동작을 하면서 제 몸을 만지게 하여 몸동작을 배우도록 하는 것입니다.
어드레스, 테이크웨이, 백스윙, 탑스윙, 다운스윙, 팔로우, 피니쉬 등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제 몸을 부분동작으로 그분들이 만져서 알 수 있도록 했는데 다행히 다들 쉽게 이해하더군요.

그 당시 저는 운동을 열심히 해서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식스팩 복근이 있었는데 어떤 분이 제 몸을 만지다가 배를 만졌는지 선생님한테 초콜렛 복근이 있다고 소리쳐서 그 다음부터는 레슨할 때마다 다들 제 복근을 은근히 만지는 것이 일과가 되다시피 했습니다.
제 별명은 복근 덕택인지 어느 날인가부터 생긴 것과 상관없이 '얼짱선생님'이나 ‘원빈선생님’으로 불리어졌습니다.ㅋㅋ  
스승의 날이 되면 회원들에게서 원빈선생님 감사하다며 선물도 받고 또 다른 즐거움을 주신 선생님께 고맙다는 문자메시지를 자주 받기도 했지요.

저는 시각장애인들을 레슨 받는 일반인과 똑같이 대우했습니다.
사용한 클럽도 본인이 정리하도록 하고,
일부러 제가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하면 그분들은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서 가져다 주기도 하고...
어떻게 정확히 자판기 위치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그분들은 항상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기억하고 자신과 사물들의 위치를 발걸음으로 기억한다고 하더군요.
오른쪽으로 다섯걸음, 왼쪽으로 세걸음 다시 앞으로 일곱걸음 등으로 모든 사물의 위치를 발걸음으로 이미지화해서 기억한대요. 

선천성 전맹은 혼자서 지팡이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을 정도로 능숙하고 금방 익숙해지지만, 후천성 전맹은 위치 감각이 전혀 없어 도움을 받지 않으면 혼자서는 세걸음도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봤습니다.    
대부분 안마를 하는 직업을 가진 분들이라 가끔 제 어깨를 주무르도록 하면 서로 먼저 하려고 했고, 레슨할 때마다 여러 우스운 얘기도 해주고 친구처럼 지냈지요.
역삼역, 선릉역 주변에 안마시술소가 많은데 그곳의 사장님들이 저에게 골프를 배운 분들이 많아 지금까지도 저는 그곳에 가지 못하고 있답니다 ^^ 

그 당시 포천 베어크리크에서 시각장애인들에게 9홀을 배려해줘서 한달에 한번 실전 라운드를 하러 갔습니다.
10명이 플레이를 하면, 도와주는 10명의 서포터즈가 필요했습니다.
항상 서포터즈가 공을 놔주고 어드레스와 방향과 거리를 알려주면 플레이를 하는 방법이었지요.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시각장애인 골프룰을 만들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신기한 것은…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들도 공을 치자마자 곧바로 헤드업을 한다는 것입니다. 
공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고 우리 근육은 팔을 뻗으면 자연스럽게 고개가 들리도록 되어 있는 듯 싶습니다. 
 
2년쯤 그렇게 봉사활동을 하다가 회사 일이 바빠 가지 못하게 되었고,
지금은 시각장애자골프협회라는 사단법인으로 조직이 구성되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엊그제 우연히 시각장애인 골프 방송을 보면서 저에게 배웠던 분들이 20년 가까이 열심히 골프를 하는 모습을 보니 정작 골프에 심드렁해진 제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고 그러네요.

골프를 좋아하는 열정 그 모습 그대로 
항상 건강하고 골프와 함께 쭉 아름답게 이어 나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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